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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염상사 피살사건2부 조작 그리고 결말

by oneday story 2018.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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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염상사 피살사건 1부에 이어 31일 2부가 방영 되었습니다.

 

시작은 주력 용의자 였던 당시 기무사 (이중사), 48세의 나이로 청주시 차안에서 자살했습니다.

정복을 입은채 마지막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15장의 자필 유서가 발견 되었습니다.

 

 

 

지난 2001년 12월 11일 밤 얼굴과 머리에 피를 흘린채 길에서 사망해있던,

 

34살의 맹호부대 근무하던 염상사는 길을 가던 행인에 의해서 발견이 된다.

 

 

범행 도구는 대추나무 몽둥이로 성인 남성이 한손으로 잡기 힘든 크기 였습니다.

 

이러한 둔기를 사용해서 머리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원한이 있는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렇게 원한만할 사이가 된 사람이 있을까 ?

 

당시 홍준위는 기름을 빼돌리다가 염상사에게 걸리게 되었고 둘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범행동기를 가진 임무는 홍준위 인데...

 

기무 부대원 이중사는 왜 주력 용의자가 되었을까 ?

 

사건이 있던 당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던중.. .

 

이중사와 염상사가 홀로 나가서 대략 15분 정도 서로 언쟁을 하면 다투었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중사가 기름을 빼돌렸던 홍준위와 함께 이득을 챙기고 있었으며,

 

그사건을 좋게 끝내기 위해서 염상사에게 넘어가 달라고 부탁했지만, 타결이 안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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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증거 (담배 = DNA)

 

사건현장에서는 유력한 증거로 염상사 옆에서 담배꽁초 2개가 발견 되었습니다.

 

유전자 감식결과, 홍준위와 이중사의 DNA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희망당구장에서 그때 당구를 쳤다는 유력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사건이 무마 되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헌병은 과학적 물증 보다 알리바이를 더 신뢰 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었던 이경위의 추가적인 담배꽁초 의뢰 때문입니다.

 

 

미제로 남고, 수사가 빠르게 뺑소니로 종결되어야 했던 이유

 

1. 상부측에서 조기 종결 요청 멘트

 

당시 7군단장 김장수는 "부대관련 수사가 장기화 되는 것은 사기저하 및 부작용이 우려됨으로 정상적인 부대운영이 될 수 있도록 당부"

 

당시 맹호부대 사단장 박경서 " 노고를 지하하나 단지 성과가 없어 아쉽다. 빠른 시일내에 정상적인 업무체계로 전환되어 고유임무 수행요망 ! "

 

당시 맹호부대 포병여단장 황인무 " 범인체포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인정하나 간부들의 잦은 소환과 수사관들의 부대 방문등으로 안정적 부대운영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을까 우려 된다"


2. 믿었던 이경위의 반전 사건 ( 담배꽁초 )

 

당시 사건은 이경위가 주도적으로 담당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다른 경찰들은 수사에서 빠졌다고 합니다.

 

당시 현장에서 처음 제출되었던 담배꽁초가 이중사의 DNA와 일치 하였지만,

 

그후 이경위가 다시 한번 또 다른 담배 꽁초를 국과수에 요청 의뢰를 합니다.

 

 

그 시점은 3월5일 이중사의 DNA가 이미 일치했던 시점이 지난

 

3월 15일 이유없이 추가적으로 담배 꽁초 2개를 더 의뢰합니다.

 

표창원 의원은 " 갑자기 난데없이 새로운 증거물이 감정의뢰가 된다는 것 그 자체부터가 말이 안되는 것이고, 오히려 진정한 증거물들의 증거 능력을 훼손시켜 버리는 물타기라는 것입니다"

 

 

취재 당시와 염상사 유가족에게도 믿을 주었고, 진정성 있게 염상사의 사건을 조사한 것 같았던 이경위가 이같은 알수 없는 의뢰를 한 이유는 무엇을까 ?

 

 

이경위는 이뿐만 아니라, 당시 사라진 염상사의 신용카드를 지인에게 주고 돈을 인출 하라고 지시 했습니다.

 

또한 그 신용카드를 사용했던 내역이 발견되어 군이 조사를 하러가는 자리에 항상 따라 다녔고,

 

결국 카드사용 범인이 발견되자 ! 깜박했다며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

 

 

이같은 수사는 이중사를 위한 수사였습니다.

 

이 시기는 DNA가 이중사와 일치하고 용의자가 이중사로 좁혀지는 시점 이었습니다.

 

 

사실 이경위와 이중사는 사건 이후 자주 만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둘만의 술자리도 자주 가졌다고 했습니다.

 

사건이 발생 후 기무대 마중사가 이경위를 이중사에게 소개를 시켜 주면서 인연은 시작됩니다.

 

 

표창원 의원은 이경위가 이같은 조작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 가정을 합니다.

 

1. 극단적인 무능한 이해하기 힘든 그런 예외적인 존재의 가능성 (무능한 이경위)

2.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용의자로부터 돈을 받았다.

3. 본인의 적극적인 동참과 협조도 있었겠지만,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지시를 받아서

 

이중 3번째 가설이 가장 유력하며, 당시 수사를 하던 당시 사건을 담당하던 수사계장이 갑자기 교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노 수사계장은 시신발견 직후 군이 뻉소니 가능성을 지시할때 막고, 타살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수사계장이 교체가 되고, 가평경찰서 일부 형사들이 전출을 가게 됩니다.

 

 

경찰은 홍준위, 이중사 두 용의자를 함께 공동 조사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이중사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홍준위는 자신만이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마 계속 비밀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중사가 살아 있었다면, 진실이 더 빨리 밝혀 질 수 있었겠죠.

 

 

사건에 대해 더 숨기려고 했던 이중사 하지만 실제적으로 범행동기가 뚜렷한 홍준위 (기름 빼돌리기)

 

과연 대추나무 몽둥이로 타격을 가한 사람은 누구 일까요 ?

 

현재 증거품인 대추나무 몽둥이는 한번 더 국과수에 의뢰를 하려 했지만, 분실로 인해 사라지 상태 입니다.

 

당시 염상사의 사체를 처음으로 발견했던 최초의 목격자이자 유일의 목격자.

 

 

최면으로 2001년으로 다시 되돌아 갔습니다.

 

당시 염상사를 발견하기전 다리에서 두명의 남자를 봤다고 했습니다.

 

한명은 강에서 올라오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강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왼손으로 담배를 피고 있었다(왼손잡이)"라고 했습니다.

 

 

최면 수사의 내용을 들어보면,

 

유력 용의자 홍준위와 이중사가 확실해 보입니다.

 

이 사건은 아직도 계속 진행중에 있고, 아마도 곧 진실이 밝혀 질 것입니다.

 

 

염순덕 상사의 유가족은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며,

 

육군에서는 염상사의 사망을 순직으로 처리할 것을 논의중이라고 했습니다.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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